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>'''حاكميت بلا قيد أو شرط ميللتيندير [br]Hâkimiyet, bilâ kayd-ü şart Milletindir.[br]주권은 제한 없이 조건 없이 [[국민]]의 것이다.'''[* 1921년 제정된 [[https://tr.wikisource.org/wiki/Teşkîlât-ı Esâsîye Kanunu|기초조직법]](Teşkîlât-ı Esâsîye Kanunu) 제1조에서 [[오스만어]]로 쓰인 어구이다. 이후 [[언어순화 운동]]으로 개정된 표현은 아타튀르크의 영묘인 [[http://www.hurriyet.com.tr/kelebek/magazin/gulben-ergen-yazdi-30-agustos-zafer-bayramimiz-kutlu-olsun-40211031|아느트카비르]](Anıtkabir)와 [[https://tr.wikisource.org/wiki/Türkiye_Cumhuriyeti_Anayasası_(1982)/I_Kısım#6|튀르키예 공화국 헌법 제6조 서문]]에서 찾아볼 수 있다. 현대어로는 "Hâkimiyet, kayıtsız şartsız milletindir" 혹은 "Egemenlik, kayıtsız şartsız ulusundur"이다. 혹은 이 두 단어가 섞인 표현들도 볼 수 있다. 아타튀르크 시절에 millet을 고대 튀르크어와 몽골어에서 비롯한 ulus로 바꾸었지만 현대에는 쓰임새가 많이 줄었다.] [[튀르키예]]의 [[군인]] 출신 [[정치인]]이자 튀르키예의 초대 [[튀르키예 대통령|대통령]]. [[갈리폴리 전투]]와 [[튀르키예 독립전쟁]]의 전쟁영웅으로 그의 성씨인 아타튀르크는 '[[튀르키예인|튀르크인]]의 아버지'라는 의미를 가지는 이름으로, 그 이름에 걸맞게 '현대 튀르키예의 [[국부]]'로 칭송되고 있다. 특히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은 [[오스만 제국]] 출신임에도 [[정교분리]], [[세속주의]]를 추구했으며, 유럽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서구화를 단행하였다. 그 덕분에 오늘날의 튀르키예는 국민 대다수가 [[무슬림]]임에도 불구하고 세속주의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. 법체계 면에서도 이슬람 율법인 [[샤리아]]가 아닌 [[대륙법]]을 따르는 공화제를 유지하고 있다. 그래서 [[이슬람 근본주의]]자들과 이슬람 학자들이 철천지 원수로 인식하는 대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.[*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이슬람 학자들(그중에서 한발리파 계열과 그 학파에서 파생된 와하브파와 살라프파)이 부정적으로 보는 대상은 이슬람이 아닌 것과 이슬람에 맞지 않다고 인식되는 것들이며 특히 서구, 기독교, 유대인, 세속주의, 민주주의가 그 대상이 된다.] 외교에 있어서도 국제정세를 잘 이해하고 잘 행동한 유능한 지도자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